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에서 오래된 점포 가운데 하나인 동산약방의 주인 나의환씨가 지난 4월 중순 약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토박이인 그는 이 자리에서 약국을 한 지 40년이 됐다고 한다. “아휴, 아저씨 계시구먼요. 시누가 다리 수술을 했는데 콧속도 헐고 입안도 헐고…. 약 좀 줘요.”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약을 찾자 반색을 한다. 마을의 유일한 약국이라 없어져서는 안 되는 이곳은 동네 어르신들 사랑방 노릇도 한다.“저어기, 저기가 초등학교 때 소풍 갔던 봉래산입니다. 봉화를 피웠대서 그런 이름이 붙었대요.”육안으로 빤히 바라다보이는 산이었다.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가도 될 것 같은 거리인데, 북녘땅이라 했다. 민간인통제구역인 서해 끝자락의 섬, 교동도는 북한과 그렇게 가까웠다. 뱃길로 겨우 2.5㎞ 거리였다. 율두산 자락 망향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면 황해도 연백군의 산 아랫마을은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동네 개가 돌아다니는 것까지 보인다”고 함께 간 실향민 지광식(81)씨가 말했다. 그의 눈엔 그리움이 묻어났다. 지난달 교동도 대룡시장을 다녀왔다.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인 교동도는 한국 근대사에서 독특한 서사를 갖는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워낙 가까운 탓에 6·25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연백을 통해 남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피란민 철수 작전으로 유명한 흥남부두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이 루트를 통해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한다.그때 교동도로 들어온 피란민들은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면 소재지였던 대룡리에 좌판을 벌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게 대룡시장이다. 시장 골목에서 60년 넘게 ‘교동이발관’을 하는 지씨도 그때 부모님을 따라 형제들과 내려온 연백 출신 실향민 1세대다.“13살 때 나왔는데…. 이 집이고 뭐고 그땐 다 움막이었지요. 집집마다 피란민들이 들어찼어요. 집이라는 게 가마니 들추면 바닥에 가마니 깔아놓은 게 다였어요. 시골 뒷간만도 못했지요.”6·25전쟁 와중인 1952년부터 있었다는 교동이발관에 15세에 들어온 지씨는 궂은 잡일부터 하며 이발 기술을 배웠고, 결국 인수해 이발관 주인이 됐다. “여기서 산 생활은 고생해서 그런지 다 잊어버려요. 거기서 산 기억만 또렷하네요.” 학교는 꿈도 못 꾼 채 자수성가하며 살아온 신산했던 세월을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그가 바다 건너 북녘 봉래산을 일부러 보여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교동이발관 골목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동산약방이 나온다. 교동면 동산리 토박이인 나의환(89)씨가 주인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67년 약업사 자격증을 딴 뒤 약방을 개업했다. 처음엔 인근 삼선리에서 하다가 40년 전 목이 더 좋은 대룡시장의 이 약국을 인수했다. 이전에 약국을 했던 사람은 피란민이었다고 한다. 그렇듯 대룡시장은 실향민과 원주민이 함께 60년대 이후의 개발 서사를 써온 흥미로운 공간이다.“피란민이래, 원주민이래. 한동안은 서로 갈렸죠. 하지만 몇 년 지나니 서로 금방 섞이더라고요.”이런 융화력은 강화도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군이 같은 생활권이었기 때문이라고 토박이 향토사학자 한기출(70)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 회장은 분석했다.6·25전쟁 전, 교동 사람들에게 황해도는 인천이나 서울보다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가더라도 인천·서울로 가지 않고 개성·평양으로 갔다. 특히 연백은 연백평야가 있어 곡창지대였다. 반면 교동도는 저수지 하나 없는 천수답이었다. 흉년이 질 때면 교동도 사람들은 바다 건너 연백으로 품을 팔러 갔다. 장을 보러 가도 연백 장을 갔다. 한씨는 “교동도 사람들이 쓰는 말도 인천보다 북한 말에 가까웠고 사람들이 다들 사돈의 팔촌 관계였다”면서 “피란민과 토박이 간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그런 뿌리 깊은 유대감”이라고 말했다.분단은 섬사람들의 생활을 바꿨다. 6·25전쟁 전에는 배편으로 예성강과 임진강 입구를 거쳐 서울 마포까지 갔지만 분단으로 그 길은 끊겼다. 서울로 가려면 인천을 거쳐야 했고 인천 가는 배편은 하루 한 번뿐이었다. 피란민들이 유입되며 한때 1만명에서 3만명으로 급증했던 인구는 점점 유출되며 현재는 3000명 정도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대룡시장은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보존된 옛것’을 찾는 관광객들의 명소가 됐다. 사진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대룡시장의 여러 장면으로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교동이발관 내부, 동산약방의 유리문, 대룡시장 입구, 교동극장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그렇게 시간의 뒤안길로 밀려났던 교동도가, 특히 대룡시장이 최근 들어 레트로 열풍을 타고 핫 플레이스로 부상했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골목길이 미어터진다. 낡은 미닫이문의 가게, 옛날 다방, 극장 등이 추억팔이 상품이 된 것이다.지씨의 교동이발관에도 옛날식 의자와 가위 등 이발 기구, 타일이 떨어진 세면대 등이 추억을 소환한다. 천장에는 방사형 벽지가, 벽에는 그야말로 ‘이발소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신장병으로 투석을 하면서 이발소 영업은 중단했다. 지금은 이 가게 한편에서 장성한 자녀들이 분식집을 하고 있다.동산약방은 지금도 영업을 하며 동네의 유일한 약국으로서 기능을 톡톡히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 옛날식 나무 진열장에 담긴 과산화수소수 포비돈 아세톤 삐꼼씨 등이 추억을 자극한다. 빼꼼히 안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레트로 감성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겨냥해 외지인 상인들이 낸 산뜻한 가게들이 이 골목의 풍경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융합의 서사가 궁금하다.후원 :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교동도=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네이버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세요(클릭)▶ 국민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치우침 없는 뉴스’ 국민일보 신문 구독하기(클릭)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마주치는 쳐다보던 옷 많이 그저 이상 으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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